구시다 신사는 후쿠오카 여행기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추천 관광지이지만, 선뜻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왜냐면 검색 중에 이곳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한 칼이 뭐 그리 자랑스러운 거라고 보관을 하고 있다는 건지... 떳떳히 공개할 수 있는 것도, 또 그러지도 못 할 거면서... 더구나 과거 침략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의 뚜렷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칼을 파기하지 않고 갖고 있는 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불능, 정말이지 격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포스팅을 준비하며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구시다 신사에 보관되어 있는 칼은 '히젠토'라 불리우는 칼로, 명성황후 시해 당시 황후의 침전에 난입한 세 명의 자객 중 한명인 '토오 가쓰아키'가 사용했으며, 그가 직접 구시다 신사에 기증했다고 한다. 오로지 사람을 베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칼에는 을미사변의 작전명이었던 '여우사냥'에서 따온 듯한 '단칼에 늙은 여우를 찌르다(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칼과 함께 '황후를 이 칼로 베었다'고 적힌 문서도 구시다 신사에 함께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기사를 보아하니 2010년에 '히젠토환수위원회'가 출범, 회수를 위한 노력이 기울여졌던 모양인데, 아직도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걸 보니 구시다 신사 측(아마도 일본 정부겠지..)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 구시다 신사와 명성황후 시해 사건 관련 기사 ①
▶ 구시다 신사와 명성황후 시해 사건 관련 기사 ②
명성황후를 생각하면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고민 끝에 구시다 신사를 찾았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신사 내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상당히 불쾌했지만, 그래서 더욱 어떤 곳인지 궁금했고, 또 매년 7월이면 열리는 하카타 기온야마가사 마쯔리 때 쓰이는 야마가사(가마)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고 해서 그 부분만 놓고 보면 이색적인 외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구시다 신사 후문,,(캐널시티에서부터 연결된 구름다리로 오면 이곳으로 오게 됨)
순전히 여행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구시다 신사는 지금껏 본 일본 신사들 중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제일 컸다. 딱 보기에도 오랜 역사가 느껴졌다.
에비스 신사,,
당시는 신사의 이름은 관심도 없었고, 신사 옆 능수벚꽃에 더 눈길이 갔었다.
신사 안을 들여다 보는데, 제단 뒷 편으로 무언가 검은 형체가 언뜻 보였다.
첨엔 내가 잘못 봤나 했는데, 집중해서 계속 보고 있으니 확실히 무언가가 있었다. 머리로는 고양이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검은 형체의 움직임이 몹시 신경 쓰였다. 내 기필코 네 녀석의 정체를 알고 말리라... 라는 마음으로 뚫어지게 보고 있자니, 드디어 녀석의 정체가 드러났다.
역시나.. 고양이었다.
휴 =33
구시다 신사 본당
이곳에서만큼은 참배를 드리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비릿하고 쓴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네들에게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소중하고 친숙한 곳이겠지만, 내게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있는 곳이기에 그 모습이 마냥 곱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이번에 후쿠오카 여행을 준비하면서야 알게 된 사실이고, 저네들이야 더 알 리 만무하겠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구시다 신사의 느낌은 대체적으로 굵직굵직했다.
정문과 후문 앞에 서 있던 토리이와 문의 크기 때문에도 그런 기분이 들었지만, 본당에 걸려있는 이 '시메나와' 때문에 그런 인상이 든 것 같다.
이 '시메나와'는 우리나라의 금줄과 비슷한 것으로 신성한 구역에 부정한 기운이 깃들지 못하게 하는 경계선 같은 것이다.
본당엔 각 벽면에 도깨비 가면이 걸려있는데, '시메나와'와 비슷한 의미인 듯 하다.
도깨비니까 악귀를 물리치기 위함인가?
본당 앞에 있는 '영천학 샘물'
구시다 신사는 불로장생과 상업 번성의 신을 모시고 있는데, 이 물을 마시면 불로장수 할 수 있단다.
이 지점에서 바라보는 본당 전경이 제일 좋았다.
지붕이 정말 근사하다.
오미쿠지를 묶고 있는....
어디를 여행하든 그곳의 풍속을 따라보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든 쉬 마주하게 되는 곳이 신사인데, 그들을 따라 참배를 드리고, 오미쿠지를 뽑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구시다 신사에서 만큼은 하지 말았으면....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시다 신사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있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
테미즈샤
참배드리기 전에 손을 씻는 곳이다.
신을 만나러 가기 전에 심신을 청결히 한다는 의미가 있는 곳으로, 신사마다 꼭 있다.
집, 석등, 벚꽃, 작은 화단과 마당....
그 어우러짐이 깔끔하고 예쁘다.
구시다 신사 정문
정문에서 천장을 올려다 보면 귀요미 십이지 동물이 그려져 있다.
이곳의 토리이를 지나니,,,
벚꽃에 드리워진 또다른 토리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어우러짐이 정말 아름다웠다.
부케처럼 생긴 탐스러운 핑크빛 벚꽃과 회색빛 토리이의 조화가 아주 잘 어울렸다.
이미 다 져버린 벚꽃을 마주했을 땐 아쉬웠지만, 덕분에 이렇게 수북히 쌓인, 마치 고운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음에 기뻐했다.
단연코 구시다 신사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여행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구시다 신사는 생각보다 볼 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이 각도에서 보니 다 져버린 벚꽃이 또 다시 아쉽단 생각이 들기도....^^;
구시다 신사는 바로 이 '야마가사(가마)'를 보러 온 거였다는....
실제로 보면 "우와~"라는 감탄이 나올만큼 진짜 크다.
축제 행렬 속에서 마주한다면 더욱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것 같다.
후문쪽에 있는 카와바타 거리,,
어디서 별로 볼 거 없다고 했던 것 같아서 그냥 패쓰했다.^^ㆀ
구시다 신사는 후쿠오카로 여행을 갔다면 한번은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꼭 인지하고 갔으면 좋겠다.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만약 나도 모르고 갔더라면 그저 구시다 신사의 겉모습만 보고는 흠뻑 반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내가 다녀온 곳들 중 행여나 미처 몰랐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어린 곳은 없었을지... 있었다면 무지하게 그저 좋아라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지난 일본 여행들을 한번 돌이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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