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2012. 3. 5. 21:34, Filed under:
별 볼일 없는、일상/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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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3월의 첫날 내리던 비는 촉촉하니 향긋한 봄내음이 묻어있었는데, 봄의 신호탄을 터트려야 한 경칩인 오늘 내리는 비는 겨울의 마지막 한기를 잔뜩 머금은 듯 스산하다.
오늘부터 아침마다 출근준비를 하는 동안 NHK를 듣기로 했다. 따로 일본어 공부할 여유도 없고, 매번 NHK듣기에 실패해 왔던터라 재도전할 요량으로 틀어 두었는데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일본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고, 꽤 많이 올 모양인지 비 피해에 대한 주의를 주고 있었다. 바로 이웃나라인만큼 우리나라 날씨와 비슷할 때도 많고, 가끔 우리나라 일기예보보다 일본의 일기예보가 맞는 경우가 있어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
점심시간..
사무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치고 제법 빗줄기가 굵었다. 우산을 가지고 나올까 하고 잠시 망설이던 찰나, 곁에 있던 직원분이 “그냥 맞지, 뭐.” 하고 먼저 뛰어가셨다. 식당까지 거리가 얼마되지않아 나도 뒤따라 비를 맞으며 뛰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도록 비는 그치지 않았다.
갑작스레 혼돈이 찾아왔다.
내가 집에서 우산을 가지고 나왔던가??... 우산을 챙겨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일은 확실히 생각나는데, 우산을 집어들고 나왔었는지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우산을 집어들어 가방안에 넣는 모습을 아무리 그려봐도 그려지지 않았다.
이런, 죽일놈의 건망증...
깜빡했구나 싶으니, 건망증을 탓할 여유도 없이 당장 퇴근길이 걱정되었다. 걱정이 이내 짜증이 되려던 찰나, 가방속으로 우산이 빼꼼이 보였다.
뭐야, 나 챙겼던 거야??
근데 우산을 보고도 우산을 챙기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건망증이 심각해지고 있단 사실은 이미 자각하고 있었지만, 또다시 맞닥드리니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덜컥 겁이 났다.
예전같지 않은 기억력... 그리고 도를 넘은 건망증...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것저것 잊지말고 다 해야한다는 조급함때문이라고 그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해왔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혹시 조기치매는 아닌지..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줄을 놓는 건 아닐지...
종국에는 나란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지...
요즘들어 부쩍 겁이난다.
괜찮아..괜찮아...
나를 다독이며 애써 평정심을 찾으려하지만 미혹의 터럭까진 털어내지 못할 듯 싶다.
나이탓으로 돌리기엔 난 아직 젊단 말이다.. ㅜㅜ
예전에 하다 포기했던 왼손으로 글씨쓰기라도 당장 시작해야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