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여년이 넘도록 이 영화의 주인공이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인 줄 알았다. 특별히 “러브레터”를 재미없게 본 건 아니지만, 왠지 “나카야마 미호”에게는 영 호감이 가지 않았다. 사실 그 때문에 몰입도가 좀 떨어진 측면이 없지않아 있다. 그래선지 그녀의 영화는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편견인건 알지만 나는 제아무리 떠들석하도록 입소문이 난 인기있는 영화나 드라마래도 주인공이 싫으면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오랫동안 “4월 이야기”를 외면해왔다. 그런데 지난 달 “4월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몇번이나 봤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주가 “마츠 다카코”란 사실을 알게 됐다. 왜 그런 착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제서야 그동안 "나카야마 미호"로 보이던 포스터 주인공의 얼굴이 비로소 “마츠 다카코”로 보이게 됐다. ^^;;;
쨌든 그동안의 오랜 오해를 풀고 15년이 흐른 2013년 3월의 끝자락에서야 “4월의 이야기”를 봤다. 영화의 초반은 다소 지루했다. 분명 첫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들었는데, 도대체 그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쿄 무사시노시에 있는 무사시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홀로 홋카이도에서 상경한 ‘니레노 우즈키’의 동네 정착기??.. 학교 적응기?..가 영화의 초, 중반을 차지했다.
낯선이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는 히키코모리(?)같은 느낌의 이웃 여자, ‘우즈키’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던 똘끼(?) 가득해 보이던 같은 과 친구 ‘사에코’, 극장에서 허겁지겁 도망쳐 나오느라 놓고 온 책을 끝까지 쫓아와 돌려주고 가던 남자... 등등.. 주인공 ‘우즈키’를 둘러싼 환경과 주위 사람들은 보는 내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아마도 그들이 하나같이 다 별나 보였던 건 낯선 곳에서 홀로 적응해가는 ‘우즈키’가 느꼈을 불안감과 긴장감의 표현이었지 않나 싶다.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어서야 분위기의 반전이 일어난다. 왜 ‘우즈키’가 그토록 동네 서점을 들락거리며 쓸데없는(?) 책을 사고, 주인 아줌마의 눈치를 살피며 이것저것 캐물었는지... 새학기 첫날 과동기들과의 자기소개 시간에 왜 우리 학교에 왔냐는 ‘사에코’의 질문에 왜 우물쭈물거리며 제대로 답변을 못했는지... 그저 답답하기만 했던 그녀의 행동들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서점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주길 갈망하는 눈빛으로 ‘야마자키’를 바라보던 모습... 그가 자신을 알아보자 단 한번의 튕김(?)도 없이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던 모습...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갤러리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한번 더 ‘야마자키’ 선배를 만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빗속을 뚫고 서점으로 달려가던 모습... 망가진 빨간 우산을 들고서도 ‘야마자키’를 향해 환하게 웃던 모습... 그런 ‘우즈키’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설레임이 오롯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무언가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의미가 되기도 하고... 순수한 열정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서툴고 어리숙한, 그래서 제어하지 못하고 쉬 마음을 보이고 마는...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랑에 빠졌을 때의 일련의 감정들이 마치 봄의 새싹처럼 파릇파릇 가슴속에 돋아났다.
어느새 나는 가지런히 모은 무릎을 양팔로 끌어안고는 화면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진행될 ‘우즈키’의 사랑에 대한 궁금증으로 설레임이 극에 달해있는 순간, 끝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왔다. ㅜㅜ 런닝타임이 짧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제 겨우 지루함이 사라지고 흥미가 고조에 달하니 끝나버리다니...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여운이 길게 남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와 “4월의 이야기”는 모두 첫사랑이란 공통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러브레터”가 첫사랑의 아련함을 담고 있다면, “4월 이야기”는 설레임이 가득하다. “러브레터”에서는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4월 이야기”에서는 봄을 배경으로 한 이유도 아마 겨울과 봄이 주는 계절의 느낌속에 각각 아련함과 설레임을 보다 더 깊고 풍성한 감성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홋카이도의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진 “러브레터”의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설원속에 남자 친구(첫사랑)를 묻었고, “4월이야기”의 ‘니레노 우즈키’는 ‘와타나베 히로코’의 남자 친구가 묻혀 있는 바로 그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첫사랑을 찾아온다. 아련함이 녹고 설레임이 돋아나는 봄의 도쿄로... 다소 억지스러울지 몰라도 두 영화는 그렇게 서로 이어지는게 아닐까??
“러브레터”는 철저히 ‘와타나베 히로코’의 입장에서 봐서 그런지 ‘남자 후지이 이츠키’와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사랑이 마냥 곱게만 보이진 않았던지라, 개인적으로는 첫사랑의 설레임이 가득한 “4월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