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2012)
-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 주연 : 이치카와 미카코(사요코 역)
리어커에 고양이 여섯마리를 태우고, "렌~타~~네꼬!(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외치고 다니는 사요코!
그녀의 고객 대상은 마음에 구멍이 뚫린 외로운 사람들이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할머니, 냄새가 난다며 자신을 멀리하는 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기러기 아빠, 날마다 파리만 날리는 사무실을 지키다가 무료함에 빠진 렌터카 회사 여직원... 사요코의 고양이들은 그들의 마음에 뚫린 구멍을 살포시 메워준다.
그들의 구멍난 마음을 가운데가 움푹 파인 푸딩으로, 구멍난 양말로, 링 도너츠로 표현한 것이 참 인상 깊었다. 특히 렌터카 회사 여직원이 설탕이 잔뜩 묻은 링 도너츠를 빙빙 돌려가며 밖같 부분만 갉아 먹고는, 안의 구멍만 작게 남았을 때 한 입에 쏙 넣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녀 홀로 견뎌온 외로움의 시간과 마음에 뚫린 구멍이 눈에 보이는 듯 해서 짠했다. 솔직히 렌터카 여직원의 이야기는 사요코의 꿈과 데자뷰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억지스러움이 느껴져 반감이 일었었는데, 그 장면 때문에 다시 본래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잔잔하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같은 패턴의 반복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하지만 느긋하게 흘러가는 사요코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아늑함과 평온함에 잔잔히 젖어들게 된다.
그녀가 홀로 사는 집은 평온함과 느긋함의 상징이다. 고양이들이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집 안을 돌아다니고, 때론 작은 움직임도 없이 웅크린채 잠을 자고.. 사요코는 마당에서 이불을 털고, 비오는 날은 천장에 빨래줄을 이어 빨래를 넌다. 불단엔 단 하나뿐인 혈육이었던 할머니가 모셔져 있다. 가끔 마당에 나와 있으면 이웃집 할머니(여장 남자? 진짜 할머니는 아니겠지? ^^;)가 찾아와 밉살맞은 말을 늘어놓고 간다.
고양이에게만 인기있는 그녀지만, 사요코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으로 하와이에 가고 싶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녀에게 남자는 생기지 않는다. 중학교 남자 동창이 등장하기에 사요코에게 드디어 남자가 생기는 것인가 하고 기대했지만, 그는 만나자마자 인도(?)로 가버린다. 어마어마한 반전을 안겨주고...
변함없이 리어커를 끌고 강둑으로 나온 사요코..
그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신의 외로움을 고양이들이 달래주었다고 말하지만, 이전까지와는 달리 리어커를 끌고 가는 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 모습에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양이만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남아보였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사요코에게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모두를 사랑해 주는 남자가 꼭 나타나주었으면... 하고 빌었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나도 외로워졌다. 분명 영화를 보면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의 모습에 사요코의 고객들처럼 나도 치유받고 있는 것 같았는데...
과연 나의 이 외로움은 고양이만으로 치유받을 수 있을까?
덧> 화면의 색감이 따뜻해서 색감 자체만으로도 감성적이게 만드는 영화였다.
촬영한 카메라가 무엇일지 궁금해 보긴 첨이었다.ㅋ
사요코가 사는 마당 딸린 단층집을 보며,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단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일본 주택다운 간소함이 느껴지면서도,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넓은 거실이 평온하고 아늑해 보여서 마음에 쏙 들었다.
처마 끝에 걸린 풍경에도 마음이 끌렸다.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여리고 경쾌한 울림이 좋았다. 다음에 일본에 가면 잊지말고 꼭 작고 예쁜 풍경을 사와야지 하고 생각했다.
사요코가 키우는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고양이들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화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요코의 집에 있는 모기향 피우는 통(?), 그리고 사요코의 루즈핏 옷들에도 자꾸만 눈길이 닿았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참 구석구석,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머물게 한다. 스토리도 좋고, 소품, 의상, 장소... 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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