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2012. 2. 27. 13:19, Filed under:
별 볼일 없는、일상/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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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을 하거나 무언가 긴 글을 쓸라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키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야 뇌세포가 꿈틀대며 글이 써지기 시작한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어 모니터와 키보드 대신 노트를 펴고 볼펜을 쥔 채 글을 쓰려고 하면, 갑자기 정체된 고속도로처럼 뇌세포들이 움직임을 멈춰버린다. 어느새 노트엔 두 줄로 쫙쫙 그은 새카만 볼펜줄만 가득해지고, 만족할 만한 단 하나의 문장도 완성시키지 못한다.
그 옛날(?)엔 어떻게 노트와 연필로 글짓기를 했었을까 의아할만큼 지금의 나는 글을 쓰는데 있어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에 길들여져 있다. 만약 컴퓨터가 없다면 핸드폰으로는 대체 가능하다. 그리고 핸드폰에서도 색이 들어간 메모장보다는 하얀색 바탕에 커서가 깜박거려주어야 안정감이 든다.
노트와 연필(볼펜)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 건 컴퓨터로 글을 써 버릇한 오랜 학습에 의한 습관때문인 걸까??
아니면 내 안에서 나도 모르는 어떤 무의식이 노트와 연필을 거부하는 걸까??
연필로 글을 쓰다 잘못쓰면 지우개로 지워야 하는 번거움이 싫다. 볼펜으로 쓰면 보기싫은 줄이 그어지는게 싫다. 글씨를 쓰다보면 펜 끝에서 휘갈겨나오는 못난 글씨도 싫고, 글씨가 신경쓰여서인지 표현하고자 하는 적당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고, 만족스런 문장은 좀처럼 완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는 back space로 쉽게 글을 지울 수 있고, 깔끔한 글씨체를 유지하며 글을 써내려갈 수가 있어서 좋다. 그리고 못난 글이라도 예쁘고 깔끔한 글씨체는 꽤 잘 쓴 글 같은 착각을 들게 함으로써, 다음 문장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가속이 붙는다. (어디까지나 노트에 글을 쓰는 것 보다 빠르다는 것 뿐, 근본적으로 나는 글을 쓰는데 굉장히 오래 걸리는 편이다. 미완성과 완성의 차이랄까??)
어쩌면 종이위에 글을 쓴다는 일은 애초부터 나하고는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릴때 부터 나는 글씨 쓰는 일 자체를 힘들어했다. 글씨가 맘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쓰는 일을 수도 없이 반복했으며, 그때문에 다이어리도 여러번 바꿔야 할 만큼 글씨를 쓰는 일은 스트레스였다. 지금은 예쁜 글씨에 대한 집착을 버려서 다이어리는 아주 멋대로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완성된 글을 써야하는 글짓기 작업은 무리인가 보다.
언제쯤 차분하게 노트를 펴고 글을 쓸 수 있을지...
아주 어릴적, 내가 머릿속에 그린 작가의 모습은 원고지에 글을 쓰는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다음번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라도 차분히 노트에 완성된 글을 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