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선택한 10번째 영화는 조승우, 양동근 주연의 퍼펙트 게임이었다. 익히 故 최동원 선수와 선동열 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야구 영화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기대감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 한때 농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적이 있었긴 하지만 한시적이었을 뿐, 난 근본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내게 있어 다름아닌 야구 이야기를 담은 영화란 당연히 관심 밖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이 영화를 택한 데에 특별한 이유같은 건 없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로 결심하고는, 개봉작을 찾아보았는데 단번에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영화가 없었다. 참혹한 전쟁영화는 싫고, 벌써 4번째 시리즈로 나온 미션임파서블도 그닥 마음이 당기지 않았고..... 결국 고민끝에 높은 인터넷 평점을 받고 있는 퍼펙트 게임을 믿어 보기로 했다.
스포츠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이 하나 있는데, 역시나 퍼펙트 게임도 그 공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 첫 장면을 연출하였다. 중요한 경기를 앞둔 주인공 선수가 비장한 각오로 복도를 걸어 경기장으로 나가는 모습과 그에 걸맞는 비장한 음악!!
영화 속 배경이 80대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복고적인 야구복장과 소품들은 왠지모를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조승우의 금속재질의 잠자리테 안경은 꽤 인상깊었다. 아웃사이더적이면서도 냉철한 승부사의 모습을 연출하는데 있어 제법 잘 어울렸다. 그를 보고 있으니, 어린시절 보았던 까치라는 만화영화의 마동탁선수가 떠오르기도 했다.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인지 솔직히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는 다소 어려웠다. 최동원 선수와 선동열 선수의 얼굴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조승우와 양동근을 그들이라고 여기며 보려니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조승우와 양동근이라는 배우 자체로 받아들이니, 훨씬 감정이입이 쉬워졌다.
영화는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무섭고도 지독한 집념을 가진 두 남자의 숙명적인 대결을 그리고 있다. 독할정도로 철저한 자기관리와 자신의 팔이 망가지더라도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공을 던지려는 최동원 선수. 그리고 자신이 존경하고 동경하던 선배인 최동원 선수를 뛰어넘어 진정한 1인자가 되고 싶은 선동열 선수. 같은 국가대표 선수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우정을 나누던 그들은, 프로야구 창단과 함께 라이벌이 되었다.
아니, 그들은 숙명적으로 라이벌일 수 밖에 없었다. 부산 vs 전남 광주, 연대 vs 고대, 롯데 vs 해태......... 학연과 지연 모든 것들이 그들을 라이벌이라는 구도로 몰고 갔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맞붙었다. 영화 속 그들의 라이벌전은 그야말로 돌풍같았다. 그 시대의 야구에 대한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그 모습이 낯설고, 심지어 과장되어 보이기도 했지만,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대립으로 묶여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겠다 싶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한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몰입하여 보게 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조승우에게 완전히 몰입되어 보았다. 그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픈 팔로 공을 던질 때 마다, 신음을 토해내며 갑자기 그라운드에서 쓰러질까봐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영화 속 그는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후배 선수 선동열에 대한 위압감이 왜 없었을까. 그에 비해 감독을 찾아가 최동원 선수를 이기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선동열 선수. 그 둘은 성격조차 달랐던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는 그들이 왜 그토록 야구에 자신들의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강한 집념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현실 속 최동원 선수에게는 그의 아버지가, 선동열 선수에게는 죽은 형이 그들을 야구의 길로 인도하였듯이, 영화 속에서도 일부분 그들이 야구의 길로 접어드게 된 이유를 다루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여기자로 나온 최정원의 역할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이다. 솔직히 왜 굳이 여기자란 캐릭터를 영화 속에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여기자도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자들만 바글바글 나오는 영화라서 칙칙할까봐 나름 산소적인 역할이랍시고 그녀를 투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중간중간 등장할 때 마다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급 떨어졌다. 그런 그녀가 조승우, 양동근과 포스터에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홍보를 위함이었나 보다.
최정원을 제외 하고는, 조연들도 모두 자신들이 맡은 바 역할을 너무나 멎지게 소화해 주었다. 최동원과 고교 동창이며 같은 구단 선수로 나온 김용철 선수역의 조진웅은 최동원 선수에 대한 시기와 질투, 열등감으로 사사건건 그의 신경을 건드리며 깐죽거리는 진상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빈 틈(?)이 많은 철없는 인물을 잘 소화해 주었다. 그리고 해태의 만년 벤치 선수 박만수역의 마동석 또한 최동원 선수나 선동열 선수, 그 둘 못지 않은 야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인물로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고, 마지막에서야 상영내내 조승우에게 몰입되어 가지고 있던 마음의 긴장감을 놓아버릴 수 있었다. 마지막 엔딩신이 살짝 억지스러움이 강해서 못마땅하긴 하지만, 영화는 감동적으로 끝을 맺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를 보실 생각이 있다면, 새해에 보는 것 보단 며칠 안 남은 올해 안에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새해를 맞는 다짐이 더욱 견고해 지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