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다.
나는 예술에 대해,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알고 있는 화가도 몇 되지 않고, 그들의 작품을 면밀히 심도있게 찬찬히 들여다 본 적도 별다른 관심도 없다. 하지만 고흐는 다르다. 그는, 그의 작품은, "별이 빛나는 밤"은, 나의 눈과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는다. "별이 빛나는 밤"을 처음 본 순간 마치 블랙홀처럼 그림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평소 별을 향한 이유없는 끌림을 갖고 있던 내게 그 그림은 내가 꿈꾸던 세상 그 자체였다.
신비로운 파랑과 은은하고 따뜻한 노랑의 색감이 좋았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듯한 구름과 하늘로 오르고 싶은 뜨거운 갈망으로 손을 뻗치고 있는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좋았다. 불빛같은 별과 마법같은 초승달이 좋았다. 그리고 이제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짧은 선들로 이루어진 고흐만의 독특한 붓터치가 좋았다. 강렬하면서도 거침없이 단숨에 그려진 듯한 붓터치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해 보이면서도 단호해 보인다. 그리고 불안정해 보이는 터치와 달리 전체적으로 한 편의 예쁜 동화같다.
아! 고흐가 그토록 꿈꾸고 그리고 싶어했던 별이 빛나는 밤은 이런 세계였구나!!
그래,,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겠지.. 그것도 익스프레스 열차를 타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나서, 그에게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좋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 자연을, 농촌을,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였고, 그림 못지않은 독창적이고 뛰어난 문장 실력을 가진 문학가였으며, 삶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하고 깊이 고뇌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는 노동의 신성함을 알았고, 그 자신도 일 하는 것 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런 자신의 그림 실력에 있어서는 결코 자만하지 않고 늘 겸손했으며, 몸이 상하는 것에는 조금도 아랑곳 않고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오로지 그림에만 쏟아부을 만큼 집념과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노력의 결실을 맺을 날이 꼭 올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 자신감과 근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호한 자신감(어쩌면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에게 심어주고 싶은 확신이었는지도.. )으로 끝까지 인내와 끈기로 버텨갈 것 같은 그도 마음의 병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다. 10년이나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동생 테오에 대한 채무감과 미안함이 너무 컸으며, 지독히도 사람을 그리워하고, 외로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애착이 너무도 강했다. 혼신을 다해 그림에만 매달렸던 이유 또한 테오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외로움을 잊기 위해 였을 테지..
그가 조금만 더 버텨주었더라면...
테오도 그렇게 허망히 고흐를 뒤따라가진 않았을 텐데..
그들이 생전에 눈부신 영광을 누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고흐의 집착에 가까운 색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부단한 노력 끝에 마침내 그는 그가 꿈꾸던 색채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색채들은 우리를 꿈꾸게 한다. 그것으로 그는 이미 세상에 자신이 졌다고 생각한 빚과 의무를 갚고도 남았다.
그가 찾은 강렬하고도 환상적인 색채가 담긴 그림들을 보고 싶다. 「론강(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길」, 생전에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별이 빛나는 밤」..
그가 꿈꾼 세계속으로 나도 함께 풍덩 빠져들고 싶다.
「사이프러스나무 옆으로, 혹은 잘 익은 밀맡 위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싶다. 이곳의 밤은 지독하게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걸 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압도될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함 앞에서 아무리 큰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우선 시작은 해야겠지.」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 지도 위에 검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 직접 가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나비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무수한 별이 있을지도, 그리고 죽은 후에는 우리도 그곳에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나.」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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