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로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이하 '바나나')의 책. 키친.
「키친」은 바나나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으로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하지만 갠적으론 앞서 읽었던 세 개의 작품(하드 보일드 하드 럭, 티티새, 하치의 마지막 연인)보다는 가장 감동이 덜 했다.(책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확언할 수는 없고, 이후에 읽은 '막다른 골목의 추억'과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보다는 좋았던 것 같기도... )
바나나 작품들의 공통 키워드 하면 떠오르는 것들...
이별(대부분은 단순한 이별이 아닌 '죽음'이다), 상처, 극복, 치유, 성숙...
가족, 친구, 연인 등 가까운 이와의 이별은 크든 작든 인지하든 못하든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바나나의 작품들은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여 성숙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딛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회귀하는 치유와 성숙의 과정 속엔 언제나 바나나 특유의 '교감'이 키워드로 등장한다. 그 교감은 매번 영적인 것이어서 처음 몇번은 그 기묘함에 신비로움을 느껴 흠뻑 매료됐었다. 하지만 서서히 식상함을 느끼고 있는데, 그 시작이 「키친」부터였다.
「키친」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감동이 좀 덜했다 뿐이지 매력적인 요소가 가득한 책이다.
총 세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키친'과 '만월'은 '키친' 후편이 '만월'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고, '달빛 그림자'는 온전히 다른 이야기로, 키친과 만월에서는 '에리코'라는 인물이, 달빛 그림자에서는 '우라라'라는 인물이 주인공 보다도 매력적으로 나온다.
특히 나는 에리코에게 왠지 끌리는데, 에리코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 생물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틀림없는(?) 남자지만, 여자로써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를, 아니 그녀를 떠올리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오시마상'이 함께 떠오른다. 그는 생물학적으로는 여자였지만, 남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어 남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죽은 아내 말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어린 아들과 살아가기 위해서 여자가 된 남자, '에리코'.
여자로 태어났지만, 성 정체성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오시마'.
그 둘의 삶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남다른 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만큼 그들의 인생이 멋져보였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삶이 존재할 수 있구나 하고, 마음의 문이 좀더 열리게 됐달까?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해변의 카프카에서 오시마가 들려주는 반편 인간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반편 인간이란 존재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나오는데, 원래 인간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맞붙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의 노여움을 사서 둘로 갈라지게 됐고, 그래서 인간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이는 것이란다.
신화인지 아님 플라톤 자신이 만들어낸 얘기인지는 몰라도 반편 인간 이야기도 좋다.
사실 여부를 떠나 반편 인간 이야기에 따르면 동성애 논란도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들이나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은 그저 자신의 반쪽이 이성이 아닌 동성이었기에 지극히 당연히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는 것 뿐이니까!
다양한 삶을 존중하는 마음이 좋다.
바나나의 책에서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밝고 희망찬 긍정의 기운을 받을 수 있어 좋다.
일시적이지만 내 삶에 애착을 갖게 된다.
요즘의 나는 긍정의 기운이 필요한 시기...
그래서 본능적으로 바나나의 책을 다시금 끄집어 보고 있는지도...
덧>>
'향연'에선 둘로 붙어있는 인간을 가른 면이 앞 쪽(가슴 쪽)이라 나오는데(둘이 붙어있는 인간을 둘로 자른 후, 잘려나간 쪽으로 얼굴과 목을 돌려놓았는데, 그 이유를 잘려나간 단면을 바라보며 항상 분별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등을 둘로 가른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 가른 흔적(등줄기를 말하는 듯)이 등에 남아있는 거라고...
나는 '해변의 카프카'를 먼저 읽었기 때문인지 당연히 등이 갈라진 단면이라 알고 있었기에, 이후 '향연'을 읽었을 때 많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해력이 딸려서 지금의 등을 가른게 맞는 건데, 앞 쪽이라 이해하고 있는 건가 하고...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다.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지, 아님 하루키가 약간의 각색을 한 건지...
그리고 향연의 반편 인간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지 내가 상상하는 그 모습이 맞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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