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초반, 심적으로 한창 힘들고 방황하던 시기(지금도 별반 다를바 없지만..) Y군으로부터 추천받은 책이다. 추천이라기 보다는 이야기 끝에 비스킷 상자를 인생에 비유한 책의 한 부분을 들려주었는데, 일면 와닿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나랑 '미도리'랑 닮았다는 말에 '미도리'가 어떤 인물인지 몹시 궁금해서 읽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당체 나의 어떤 부분이 미도리랑 닮았다는 건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느낀 미도리는 긍정적 에너지가 흘러 넘치는 당차고, 솔직하고, 밝고, 사랑스러운, 자신만의 색이 분명한, 마치 톡톡 튀는 탄산수 같은 아이였다.
그런 미도리와 내가 어디가 닮았다는 건지...
적어도 녀석에게 만큼은 솔직한 내 마음을 가장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오히려 '나오코'에게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그 깊은 우울적 기질이야말로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나를 제대로 못 알아봐준 것 같아 서운하기도, 더 좋은 쪽으로 봐준 것 같아 내심 기쁘기도 했던?!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정말 다르구나 라는 걸 새삼 느꼈더랬다.
아무튼 당시에 정말 크나큰 감동을 받았고, 오랫동안 그 감동을 고이 간직하며 살아오다 십여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땐 너무도 무덤덤했다.
또 한번 찐한 감동으로 다가오길 바랐는데...
누군가(?) "상실의 시대"는 이십대 시절엔 감동이지만, 삼십대에 다시 읽으면 그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없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회적으로 어엿한 성인이 되었기에 그에 부합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나이. 이십대.
확실히 "상실의 시대"는 몸은 완연한 성인이 되었지만, 자아는 여전히 유약하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불완전한 상태인 이십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큰 것 같다.
인간이란 더 나이를 먹어서도, 아니, 죽는 순간까지도 유약하고 방황하는 나약한 존재지만, 바로 그런 나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들며 고민하는 단계가 이십대가 아닐까 한다.
과연 고민과 방황의 끝에 답을 찾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도 답을 찾은 이들보다는 나이를 먹을수록 내면의 고민 보다는 현실의 고민을 쫓다보니 자연스레 이십대 시절의 고민과 방황을 잊은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게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금 되돌아 보기엔 너무 늦어버리고, 지쳐버린, 그래서 외면하게 되는... 눈부시게 빛나던 그 시절의 젊음은 가슴 시리고, 눈물 나게 그립지만, 그때의 고민과 방황은 다시 끌어안고 싶지 않은...
그래서 다시 읽었을 때 이전 만큼 공감할 수 없었나 보다.
그래도 어느 한 문장이 가슴에 쿵 하고 와닿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p.368)
주인공인 와타나베에게 선배 나가사와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충고하는 말인데, 자기 연민에 빠질라 치면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말이다.
오늘도 햇빛 쨍쨍 무더운 여름날의 버스 안에서 다시 한번 되뇌었더랬다.
비열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난 왜이리 이토록 자주 자기 연민에 빠져드는지....
덕분에 오늘은 이렇게 "상실의 시대"를 보다 깊이 떠올리고, 글까지 쓰게 됐으니 썩 나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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