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 별로고, 예전에 봤던 것 중에서 다시 볼 만한 거 없나?'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롱 러브레터 표류교실"을 떠올렸다. 사실 한번 다시 볼까 하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시 이 드라마를 보며 느꼈던 주 감정은 분노, 답답함, 안타까움, 아련함... 등등..... 이었다. 꽤 몰입하며 봤었는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드라마를 떠올리는 자체만으로도 당시 받았던 느낌들이 되살아나서 다음번에.. 다음번에.. 하면서 매번 다음으로 미루었던 것이다.
그러다 드디어 이번에 다시 봤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중간중간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욕을 하기도 했고, 안타깝고 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모토쿠라 고등학교...
보충 수업과 동아리 활동으로 몇몇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방학임에도 학교를 찾는다. 순간 일시적으로 강한 바람이 불고, 지진이 일어난다.
바람과 지진이 멈춘 뒤...
......... 사라졌다. 주변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오로지 학교만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커다란 씽크홀을 만들어 놓고....
사라진 학교...
학교 안의 사람들...
그들의 눈 앞엔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할 모습이 펼져져 있다. 교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검은 모래로 뒤덮힌 황폐한 사막....
2002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식이 일어나고, 한번도 본 적 없는 망가져버린 신칸센이 땅에 박혀있고...
핵폭탄이 떨어진 걸까?
전쟁이 난 걸까?
왜 우리들만 남은 걸까?
가족들은?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된 걸까?
이후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그들을 더욱 절망으로 몰아넣는데...
그들은 일순간에 변해버린 눈 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한다. 두려움에 떠는 이,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이, 분노하는 이, 냉철히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려는 이,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 물과 식량을 독식하려는 이 등등... 매 순간 모든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놓는 이가 있으면, 반대로 자신을 희생해 가며 다른 이들을 지키려는 이가 있다. 그 속엔 위기에 직면한 인간들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추악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면모를 보일 때면 그들을 향해 분노하고 욕을 하기는 했지만, 막약 내가 저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나는 어떨까 하며 매 순간 그 상황 속에 나를 대입해 봤다. 누구도 실제 상황에 맞닥드려보지 않고는 모른다. 나란 인간의 한계를... 나도 모르고 있는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있다는 걸...
몇몇 극 이기적인 인간들 빼고는 '아사미'와 '미사키'를 필두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차차 현실에 적응해 나간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 도움을 받기도 주기도 하며 두려움 보다는 희망을 잃지 않으며 지내려고 애쓴다.
저 편(?)에 두고 온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
너무나 당연히 이제 곧... 또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 믿었기에 건네지 못한 말은 학교에 있는 이들에게도 저 편의 사람들에게도 후회와 진한 그리움을 남긴다.
그 마음을 담아 학교에 있는 이들이 저 편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과연 그 말은 전해질 수 있을까?
드라마는 아무런 자각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의 소중함과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주제일 수 있지만, 멀지않은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경각심과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시간이, 평범한 하루가 하루가, 주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시작과 끝이 주는 울림이 큰 드라였다. 아사미와 미사키와의 첫만남, 그들은 첫만남에 많은 얘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지만, 다음 약속을 정하기 보다는 전화번호만 교환한 채로 헤어진다. 그러나 아사미가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일년 뒤...
여전히 미사키를 잊지 못하는 아사미는 반 아이들에게 미사키와의 일화를 들려주며, 현재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만약 그때 전화번호를 받는 것 보다 바로 다음 약속을 정했더라면...
"今を生きろ(지금을 살아라)"
그는 지금을 살라고 학생들에게 얘기하지만, 누구도 그 의미를 알려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그 말은.. 모두의 가슴에 그 어떤 말 보다 묵직하게 닿게 된다. 그리고 그 말이 가진 힘은 비로소 기적을 만들어낸다.
"지금을 살아라"
이 말의 울림이 참 좋다.
이제는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이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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