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은 속죄, 고백, 소녀, 야행관람차, 왕복서간, 모성, 경우, N을 위하여..에 이어 아홉번째로 읽은 "미나토 가나에"의 책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나 많이 읽은 건 "미나토 가나에"가 처음이다.(아마도?ㅋ.. 시리즈 제외)
그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다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매번 특정 등장인물을 향한 역겨움에 구역질이 나고,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른다. 굳이 사서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계속해서 그녀의 작품들을 찾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고, 매번 감탄할 수밖에 없는 예상치 못한 반전의 재미를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인간의 어둡고 추악한 면들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 속 그런 인간들은 결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적인 인물이 아니기에 더없이 씁쓸하게 만든다. 그리고 "반전의 여왕"이라 불리는 만큼 이번엔 또 어떤 반전이 숨겨 있을까 하고 읽기 전부터 궁금증과 기대를 하게 되는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반전 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게 되고, 다 읽기 전까지는 책을 손에서 놓을래야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펑! 하고 터지는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을 뒤짚는 반전이 한번 더 펑! 신기하게도 그녀의 작품들은 반전이 무얼까 깊이 생각해 볼 틈을 주지 않는다. 중간에 지금까지의 흐름과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문장이 늘 반전으로 이어짐을 잘 알면서도 '아, 뭐지?' 하고 의아함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것이 곧 단서라는 걸 채 깨달을 새 없이 재빨리 다음 문장으로 눈을 돌려 스토리를 쫓아 따라가게 된다.
「망향」은 여섯개의 단편이 묶인 책이다. 여섯개의 이야기는 모두 시라쓰나지마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주인공들은 모두 중년이다. 그들은 중년이 되어 섬에서 자랐던 지난 과거를 회상하고, 그속에서 숨겨진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1. 귤꽃
아버지가 돌연 내연녀와 함께 교통사고로 숨지고 난 뒤 어머니와 셋이서 귤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자매... 그런데 언니마저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남자와 함께 야반도주를 하고, 홀로 남은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고향에 남았다. 그런 동생 앞에 이십오년 만에 언니가 나타난다. 엊그제 헤어졌다 만난 것 마냥 천연덕스런 모습으로... 언니는 과연 왜 떠났던 것이었을까... 드디어 밝혀진 비밀.. 그리고 마지막에 또한번 드러나는 진실! 반전의 반전이 있는 이야기다. 반전의 재미로만 놓고 봤을 때 여섯 이야기 중에서 최고였다.
2. 바다별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아빠..
엄마와 어린 아들은 밤마다 아빠의 흔적을 찾아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다닌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조차 없다.
어느 날 그런 모자에게 다가온 한 중년 남자..
그는 모자를 살뜰히 보살펴 준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그의 호의가 달갑지 않다.
남자가 말쑥한 옷차림으로 꽃을 들고 모자를 찾아온 날... 그날 이후 아저씨와의 인연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아들을 둔 중년이 된 주인공..
그에게 학창시절 친구가 만남을 청해 오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현실성 있게 느껴졌던 이야기였다. 깊이 생각할 수록 딜레마에 빠져버리는... 만약 내가 아저씨였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하고 고심하게 했던 이야기였다.
3. 꿈나라
드림랜드를 꿈꾸는 소녀!
소녀에게 드림랜드는 꿈속의 꿈, 이룰 수 없는 꿈의 상징이다. 거리나 가정 형편의 문제가 아니라 집 안의 절대권력자인 완고한 할머니 때문에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성인이 된 그녀는 드디어 드림랜드에 입성한다. 남편과 어린 딸 아이와 함께... 이야기는 드림랜드에서의 즐거운 시간과 어린 시절 드림랜드에 대한 동경이 교차된다. 그리고 그 강한 동경으로 인해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감정 하나를 잃었음을 깨닫는데...
그녀가 감정 하나를 잃었다는 말이 어찌나 가슴 아프던지.... 나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잃어가는, 이미 잃어버린 감정들이 있어 그 쓸쓸함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주인공과 할머니와의 관계 때문인지 "미나토 가나에"의 「소녀」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4. 구름 줄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온 주인공..
그 살인자는 다름 아닌 엄마로 엄마가 죽인 건 아빠였다. 엄마는 출소 후에도 고향에 남았다. 때문에 엄마와 자식들은 마을 사람들의 온갖 수모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고향을 떠나 가수로 성공한 주인공..
그리고 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고향 사람들...
억지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주인공은 여전히 과거의 상처로 인해 괴로워한다.
주인공이 성공하자 돌변한 고향 사람들과 그들을 대하는 우유부단하고 마음 약한 주인공 때문에 격하게 분노하기도 했던...^^;;;
.......가장 가슴 아팠던 이야기다.
5. 돌십자가
등교 거부를 하는 어린 딸..
그런 딸에게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
극적인 재미는 제일 덜 했다.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들이 워낙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다 보니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잔잔한 따뜻함이 있었다.
6. 빛의 항로
학교폭력 문제와 그에 대처하는 어른들(교사, 부모)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가해자 부모의 태도 때문에 혈압이 수직상승하기도 했던...^^; 교사의 자세 보다는 가해자 부모의 자세에 촛점을 맞췄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자식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지하지 못하고, 제 자식 감싸기에만 혈안이 된 그들과 가해 당자자에 대한 응징? 뭐, 그런 스토리로...^^; 제 2의 「고백」 같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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