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로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다.
앞서 포스팅했던 티티새를 읽었던 시기에 처음 읽었고, 이후 티티새를 구입할 때 함께 구입했다. 역시나 스토리는 기억에 남아있질 않고 하치란 이름과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가 십년이 훌쩍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땐 감동이 많이 반감됐다. 특히 신비롭고 몽환적이어서 마냥 좋았던 부분들이 새삼 삐딱하게 보이고, 결코 동성애에 대한 반감이 있는 건 아님에도 초반부에 나오는 주인공 마오와 '엄마'와의 동성애 코드 부분도 왠지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땐 그런 반감을 느꼈던 부분들은 차치하고 다른 부분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필력에 새삼 감탄했다.
그녀의 책 속엔 그녀만의 눈길로 바라본 세상이 담겨있다. 섬세하고, 따뜻하고, 올곧고, 순수한... 진짜 사랑을 알고, 나눌 줄 아는, 그래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역시 요시모토 바나나다. 확실히 그녀에겐 그녀만의 또렷한 색이 있다.
그녀의 눈길로 내 일상을 들여다보자면 아무런 특색도 없고, 심지어 부끄럽고 비루하기까지한 인생이지만 일순간이나마 그런 내 삶도 썩 괜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덕분에 내 생에 처음으로 내 자신을 내 주변을 따뜻히 보듬고 싶어졌다. 지나간 삶의 과오는 너그러히 포용하고, 앞으로의 삶은 두근거리는 설렘과 애정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듬으며 살아가고 싶다.
생산성도, 특별함도, 변화도, 발전도 없는 무가치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일지라도 분명히 어제와는 다른 오늘임을 잊지 않으며, 매사에 그 다른 무엇을 느끼고, 그것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해도 감탄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 있음을 증오했던 것은 아닌데, 늘 꿈속처럼 생의 모든 장면이 멀고 뿌옇기만 했다. 많은 것들을 아주 가깝게 혹은 부자연스럽게 느꼈다. (p.7)"
"자유로워지고 싶다.
지금까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어떤 장면보다, 티베트의 스님보다, 이스탄불의 아이들보다, 길거리에서 누워자는 카트만두의 소들보다 더 멀리 가고 싶다. 자신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 내려가 닫고 닫아, 해방되고 싶다. 더럽고 질척질척한 호수 바닥의 터널이 마침내 아름다운 만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그때부터 나는 말로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설명하면 내 혈관에 흐르는 피까지 알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의 안이함은, 실제보다 늙어 보이는 내가 쓸쓸한 내 육체로부터 전 우주를 향해 발신한 유일한 어린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어른으로 홀로서기를 했고, 내 혼과 사랑에 빠졌다.
단 한순간이라도 자기 자신과 농밀한 사랑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증오는 사라진다.(p.23,24)"
"시간은 부조리한 것, 노력한만큼 되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p.25)"
"하지만 설득한다고 그의 생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일을 많이 보아 왔다. 설들의 거짓말 월드를.
진짜로 거짓말을 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자기 생각대로 타인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다. 설사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라도, 그리고 아무리 가볍거나 무거워도, 죄임에는 틀림없다. 타인의 생각이 자기 사정에 맞게 바뀌도록 알게 모르게 압력을 가하다니, 끔찍한 일이다.(p.40)"
"그 이국적인 이미지의 모든 것을 선으로 표현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흔들리는 마음의 묘사로부터 멀어진다.
이게 아니다. 좀 더 가볍게, 좀 더 또렷하게, 좀 더 미묘하고 애절하게 그릴 수 있다면...... 몇 개나 선을 그렸다. 그리면 그릴수록 생각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또 좋았다.
재미있고 재미있어서, 그것은 비유하자면 잠수를 해서 무언가를 따오는 때 같았다.
완벽한 이미지가 마음의 어두운 바다 속을 희붐하게 떠다니는데, 보려고 하면 가려진다. 하지만 그 감촉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에 물 속으로 내려가 잡으려 한다. .....<생략>..... 늘 그런 식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색을 사용하지 않아도, 색으로 물든 세계를 보고 있었다. 종이에 그리는데도, 종이보다 훨씬 넓은 곳을 그리고 있었다.(p.42,43)"
"우리는 무슨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숨을 쉬듯이. 암만 사용해도 줄어들지 않는 무엇, 이 세상에 있을 수 없기에 모두가 동경하는 것을 창조해 내는 연금술을, 우리들 자신의 몸에 시술하려 했다. 언젠가는 끝나는 청춘이라는 것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우리는.(p.55)"
"하치의 길과 나의 길이 갈라져 있다는 것, 내가 나의 미래를 그림에 걸고 있는 것처럼, 하치 역시 그곳으로 가는 것에 인생을 걸고 있음을 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진심으로 결정한 일은 다른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p.61)"
"인간은 변하는 법이다.
시간은 흘러간다. 대수로운 흐름은 아니지만. 확실하게.(p.88)"
"모든 잡다한 일들을, 좋으니 나쁘니 따지고만 있을 수 없는, 이미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복작복작 포함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어느 틈엔가 유유히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있기를.(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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