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라 타쿠야(이하 '기무타쿠')가 출연했다는 사실 보다도 드라마 제목에 먼저 반해버렸던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
밤하늘을 쪼개 놓은 퍼즐이 한 조각씩 열리면서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오프닝은, 드라마에 대한 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드라마의 핵심인 세 주인공 사이에 얽힌 과거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단 한컷에 담고 있는 '소라호시'의 또다른 명장면이 아닐까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이하 '소라호시')' 이란 예쁜 제목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연상시키지만, 이 드라마는 아쉽게도 글루미한 새드엔딩이다. 난 어릴 때 부터 만화나 영화, 드라마 등의 식상한 '해피엔딩'에 대해 반감이 매우 컸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드엔딩'은 더욱 싫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느낌을 주는 드라마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이동욱, 오연수 주연의 '달콤한 인생'이다. 이상하게 나는 이 두 드라마가 오버랩 된다. 두 드라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죽음'과 그 죽음에서 살인의 냄새를 맡고 그 사건의 진상을 캐려는 형사라는 캐릭터 때문일까? 여튼, 잘 짜여진 탄탄한 각본과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 된 드라마라 하더라도, 왠지 이 두 드라마는 다시 보고 싶지가 않다. 요즘 '소라호시'를 다시 보는 중인데, 좀처럼 다음 회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있는 이유는, 그 꽉 막힌 듯한 가슴 답답함을 느끼고 싶지 않은 본능적인 저항(?)인가 보다.
'소라호시'가 일본에서 방영 될 당시 기무타쿠의 팬들로부터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이유인 즉, 기무타쿠가 맡은 배역이 악역이었기 때문이라는데, 팬들로서는 악역 연기로 인해 그의 이미지가 실추될까 꽤나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지금까지 맡은 어떤 배역보다(그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소라호시'의 '카타세 료우'가 그와 가장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카타세 료우'. 매섭고 서늘한 눈빛, 진심이 담기지 않은 거짓된 눈... 어린시절의 기억을 잃은 대신,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 그리고 치명적인 매력의 옴므파탈.
'칸조'는 그를 악마라 했다. 하지만 신(神)은 잔인했다. 비로소 악마가 아닌 사람이 되려 했던 그를 끝내 허락치 않았다. ... 철저히 혼자였고, 그래서 더 없이 고독했던 '료우'를 기무타쿠는 너무나 멋지게 소화했다.
'칸조'의 철없는 천방지축 여동생 '도지마 유우코'.(후카츠 에리). 겉으로는 말 안듣는 철없는 동생이지만, 그렇게 보이기 위해 홀로 묵묵히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유우코'.
'소라호시'를 통해 후카츠 에리의 팬이 되었고, 이후 그녀의 다른 작품을 찾아 보게 된 것이 지난 번에 포스팅 한 '사랑의 힘'이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두 드라마 모두 같은 해인 2002년에 후지 TV 에서 방영되었던 작품들이다. 시기상으로는 '사랑의 힘'이 먼저 방영됐다. 그런데 같은 해에 방영된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두 드라마 속에서의 후카츠 에리의 변신은 정말 놀랍다.
'사랑의 힘'에서는 비쥬얼적으로도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노처녀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소라호시'에서는 발랄하고 꾸밈없는 철없는 막내 동생의 모습을 완벽히 보여주었다. 2002년의 후카츠 에리의 나이는 30살로 '사랑의 힘'에서는 실제 나이와 같은 30살의 역할이었음에도 나이보다 더 들어보였는데, '소라호시'에서는 29살의 역할임에도 나이보다도 어려보인다. 한결같이 예쁜 모습만을 고집하려는 여배우들(?)과는 달리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드라마 본연의 캐릭터에만 충실하려는 그녀의 연기에 대한 깊은 애정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
그리고 자신의 친동생도 아니면서 '유우코'에게 헌신적인 오빠 '도지마 칸조'.(아카시야 산마). 공명심에 사로잡혔던 젊은 시절의 실수(?)로, 평생 잊지 못할 과거에 대한 깊은 자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칸조'.
이 아저씨의 관서 사투리. 정말 매력적이다. 좀처럼 나이 든 배우에게는 매력을 못느끼는 나에게, 제대로 매력발산 해 주셨다. ^.~
료우의 두번째 희생양(?) '미야시타 유키' (시바사키 코우). 음침한 분위기의 그녀는 마치 시한폭탄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지독한 자존감 상실에 빠져있던, 어린아이 같은 여린 마음의 소유자다. 살짝 무서워 보이는 시바사키 코우의 비쥬얼(?)과 너무나 잘 어울렸던 역할이었던 것 같다.
니시하라 재벌의 외동딸 '니시하라 미와' 역의 이가와 하루카. 왜 내 기억속엔 이 여자가 '사랑의 힘' 에 나왔던 '야다 아키코'로 기억되어 있던 걸까?? 다시 드라마를 보면서 왜곡된 내 기억을 바로잡아 준 의외의 인물(?) 이가와 하루카. 역시나 료우의 희생양이다.
'소라호시'는 1편부터 드라마의 복선이 깔려 있다. 그래서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단 2회만 보고도 드라마의 대략적인 상황 파악이 모두 끝나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보기 시작한 드라마를 멈출수는 없을 것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세련된 연출의 힘이 드라마에 대한 강력한 흡입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스포 있으니, 드라마를 보신 분만 열어 보시길... ↓
확실히 일본은 '성(姓)'에 대해 개방적인 나라인가 보다. 우리나라 공중파에서, 방송심의가 많이 관대해졌다는 지금 방송이 된다해도 꽤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근친'에 대한 이야기를 십년전에 버젓이 다루었으니 말이다.
처음 이 드라마를 보았을 때 2회까지 깔려진 복선들 때문에,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보다가 그만 드라마에 대한 모든 결말을 알아버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 '료우'와 '유우코'가 남매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더랬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 둘의 사랑이 '근친'으로 엮여 있었기에, 못내 찝찝한 기분이 들어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 그 찝찝한 기분은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그 긴 외로움 끝에 겨우 다가온 사랑이 여동생이라니.... 오빠라니.....
마지막회에서 '료우'를 향해 날리던 '유우코'의 피스톨.....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된 진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친 오빠였다니.... 그리고 끝까지 그의 편이 되어주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니... 그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다니....
자신의 옆에 잠들어 있는 친오빠 '료우'와 강가에서 자신을 간절히 부르는 또다른 오빠 '칸조'..... 미안하다란 말을 마지막으로 '칸조'에게 남기고, '료우'의 곁을 택한 '유우코'..... '료우'의 깊은 외로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외롭게 혼자인 채 둘 수 없었던 '유우코'.....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잠든 '료우'와 '유우코'...... 너무나 안타까웠다. 가슴이 아릴 정도로.........